
영화 <마셜(Marshall)>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법관 서굿 마셜(Thurgood Marshall)의 젊은 시절을 그린 실화 기반 법정 드라마입니다. 1940년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미국 사회에서 흑인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싸웠던 마셜의 이야기는, 지금 시대에도 유효한 인권의 가치와 사회 정의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2025년 다시금 되새기고 싶은 ‘투쟁’과 ‘평등’, 그리고 ‘인간성’이라는 핵심 메시지를 이 영화는 묵직하게 전달합니다.
투쟁: 법정이라는 전장에서의 싸움
<마셜>은 폭력적인 시위나 거리 투쟁이 아닌, 법정을 무대로 펼쳐지는 ‘조용한 전쟁’을 다룹니다. 영화 속 서굿 마셜은 미국 전역에서 흑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재판에 참여하던 시절, 커네티컷 브릿지포트에서 백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쓴 흑인 운전사 조셉 스펠 사건을 맡게 됩니다. 하지만 지역 변호사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정작 법정에서는 직접 변론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제한 속에서도 마셜은 현지 백인 변호사 프리드먼을 설득해 함께 사건을 준비합니다. 이 장면에서 보이는 마셜의 진정한 투쟁은 단지 사건의 승패를 넘어서, 체제 속에서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정의의 실현에 있습니다. 그가 싸우는 대상은 단지 검사나 판사가 아니라, 미국 사회 전반에 뿌리 깊은 인종 편견입니다.
영화는 법정 드라마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그 이면에 존재하는 불합리한 권력 구조와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을 놓치지 않습니다. 마셜이 증인을 신문할 수 없다는 제약은, 단순한 제도적 장벽이 아니라 침묵을 강요받던 당대의 차별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셜은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의 투쟁은 단호하면서도 전략적이며, 감정이 아닌 논리와 팩트로 상대를 압도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평등: 헌법 속 이상을 현실로 끌어내기
<마셜>은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이라는 개념이, 현실 사회에서는 어떻게 왜곡되고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영화 초반부에는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백인 사회에서 흑인의 무죄 주장은 무시를 넘어 조롱받고,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판결을 가득 채웁니다.
하지만 마셜과 프리드먼은 이 법정 싸움을 통해 미국 헌법이 담고 있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원칙을 법정 안에 구현하려 합니다. 이들이 증거를 모으고, 증인을 설득하고, 무너져가는 정의를 다시 세우려는 과정은 단지 한 사람의 무죄를 입증하는 것을 넘어, 제도 안에서의 평등을 현실화하려는 시도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백인 변호사 프리드먼의 변화입니다. 초반에는 마셜과의 관계에 거리감을 두던 그도 사건을 파고들수록 인종이 아닌 진실과 정의가 중심이 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이 변화는 단지 개인의 성장 서사이자, 차별을 내면화했던 백인 사회가 진정한 평등으로 나아가는 작은 움직임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이상적인 평등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회 안에서 어떻게 평등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며, 관객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과연 지금 평등한 사회를 살고 있는가?
인간성: 법의 바탕에 깔린 공감과 존중
법은 차가운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고 하지만, 영화 <마셜>은 그 바탕에 인간성이라는 따뜻한 토대가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조셉 스펠은 과거의 전과 때문에, 그리고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사회로부터 ‘유죄일 것’이라는 시선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를 변호하려는 마셜은 그가 단지 피고인이 아니라 ‘한 인간’ 임을 보여주려 합니다.
영화 속 많은 장면은 인간을 이해하는 노력에 초점을 맞춥니다. 마셜은 조셉의 말을 끝까지 듣고, 그의 입장을 법정이라는 구조 안에서 설득력 있게 풀어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단순히 사실 여부를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감정, 고통, 억울함을 드러냅니다. 법정이 단지 ‘심판’의 공간이 아니라 ‘진실’과 ‘공감’이 오가는 공간으로 그려지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소수자나 약자는 종종 법 앞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놓입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단순한 기술적 변호가 아니라, 인간을 인간으로 존중하는 시선입니다. 마셜은 법을 도구로 삼되, 인간성을 근간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존경받는 인권 변호사이자 사상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12월인 지금은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이때 영화 <마셜>은 관객에게 묻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진정한 평등 사회에 살고 있는가?" 마셜의 이야기는 단지 과거의 실화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유효한 인권의 기준이 되어줍니다.
영화는 투쟁을 통해 제도를 바꾸고, 평등을 통해 인식을 흔들며, 인간성을 통해 정의를 실현합니다. 이는 모두 오늘날 우리 사회가 여전히 고민해야 할 가치들입니다. 연말에 <마셜>을 본다면 단순한 감동 이상의 깊은 성찰과 다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삶 속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