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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분석 (속죄의 절차, 시스템의 폭력, 방관의 대가)

by gogoday 2026. 2. 24.

책 <연을 쫓는 아이> 표지 사진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는 아프가니스탄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한 소년의 성장과 속죄를 그린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우정 이야기를 넘어, 개인의 도덕적 선택과 사회 구조적 폭력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파시툴족과 하자라족, 수니파와 시아파라는 민족적·종교적 경계선 위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비극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 문제에도 깊은 시사점을 던집니다.

속죄의 절차: 감정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하는 책임

아미르의 죄책감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동력입니다. 어린 시절, 그는 하산이 아세프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개입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그는 하산을 도둑으로 몰아 집에서 내쫓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과거는 아미르를 평생 괴롭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단순히 마음속으로 후회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라임 칸으로부터 하산의 죽음과 조카 소라브의 존재를 알게 된 아미르는 비로소 '절차로서의 속죄'를 시작합니다. 그는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 목숨을 걸고 소라브를 구출합니다. 이 과정은 결코 아름답거나 감동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저분하고 고통스러우며, 완벽한 결말도 보장되지 않습니다. 소라브는 구출된 후에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으며, 자살 시도까지 합니다.
이는 속죄가 '사과'라는 일회성 행위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진실을 보여줍니다.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문제 해결은 재발 방지 절차를 수립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마찬가지로 아미르의 속죄는 소라브를 데려오는 행동, 그를 보호하는 지속적 노력, 그리고 과거와 같은 방관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실천을 통해서만 의미를 갖습니다. 소설 마지막에 아미르가 소라브를 위해 연을 쫓는 장면은, 과거 하산이 자신을 위해 했던 행동을 이번에는 자신이 재현하는 '실험'과도 같습니다. 이것은 감정적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같은 상황에서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겠다는 구체적 증명입니다.

시스템의 폭력: 차별 구조가 만드는 방관의 토양

아미르의 비겁함을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결함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자라난 사회 시스템에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사회는 파시툰족과 하자라족을 명확히 구분했고,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종교적 적대감을 제도적으로 허용했습니다. 아미르는 어릴 때부터 "파시툰이 하자라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인식을 학습했습니다. 소설 속 아미르의 말처럼, "결국 나는 파시툰이었고 그는 하자라인이었다. 나는 수니파였고 그는 시아파였다. 그걸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러한 시스템은 개인의 선의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구조적 오염원처럼 작동합니다. 아세프 같은 인물이 어린 나이에도 하자라족에 대한 극단적 적대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도, 사회가 그러한 혐오를 용인하고 심지어 장려했기 때문입니다.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는 예외적으로 하산과 그의 아버지 알리를 차별하지 않았지만, 그조차도 하산이 자신의 사생아라는 사실을 숨겨야 했습니다. 이는 개인의 양심이 사회 시스템의 벽 앞에서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차별의 토양에서 자란 것이 바로 탈레반 정권입니다. 탈레반은 자신들의 지지 기반을 다지기 위해 하자라족에 대한 대량 학살을 자행했고, 하산과 그의 아내도 이 과정에서 희생되었습니다. 시스템이 허용한 작은 혐오는 결국 조직화된 폭력으로 확장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편견이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될 때, 그것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이 됩니다. 따라서 차별하는 시스템 자체를 해체하는 일이야말로, 개인의 도덕적 각성만큼이나 중요한 과제입니다.

방관의 대가: 인생은 계속되고, 책임도 이어진다

소설의 마지막은 완벽한 해피엔딩이 아닙니다. 소라브는 구출되었지만 여전히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으며, 아미르 부부의 노력에도 쉽게 회복되지 않습니다. 이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결말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 "젠다기 미구자라(인생은 계속된다)"는 이 소설의 핵심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극적인 순간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으며, 후유증과 함께 삶은 계속됩니다.
아미르가 어린 시절 저지른 방관은 단 한 번의 사건이었지만, 그 공백은 시간이 지났다고 자동으로 메워지지 않습니다. 마치 품질 관리에서 한 번의 오차가 전체 시스템의 신뢰도를 무너뜨리듯, 결정적인 순간의 방관은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바꿔놓습니다. 하산은 아미르에게 평생 충성했지만, 아미르의 방관 때문에 누명을 쓰고 집을 떠나야 했고, 결국 탈레반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다음 세대인 소라브에게까지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단순히 비극적 메시지만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미르가 소라브를 위해 연을 쫓는 마지막 장면은,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인생이 계속되는 것처럼, 책임을 지는 일도 계속됩니다. 한 번의 속죄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지만, 그 절차를 끝까지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는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누가 사람을 살리는가"라는 질문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연을 쫓는 아이』는 개인의 도덕적 선택과 사회 구조적 폭력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속죄는 감정이 아니라 절차이며, 차별 시스템은 반드시 해체되어야 하고, 방관의 대가는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는 교훈을 남깁니다. 느리고 고독하더라도 기준을 지키는 일, 그것이 결국 신뢰를 만드는 유일한 길임을 이 소설은 확인시켜 줍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연을 쫓는 아이" by 할레드 호세이니 한번에 끝내기 (문학줍줍 책 요약 리뷰 | Book Review) / 문학줍줍 - https://youtu.be/LjeAPiggt2c?si=T7SRRBBfON0AebJ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