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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로 본 인류 진화 (농업혁명, 과학혁명, 행복의 역설)

by gogoday 2026. 2. 13.

책 <사피엔스> 표지 사진

인류는 어떻게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을까요? 유발 하라리의 명저 '사피엔스'는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을 제시합니다. 불과 언어라는 도구를 넘어, 인류는 두 번의 결정적 각성을 통해 오늘날의 위치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발전의 역사가 과연 인류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을까요? 이 글에서는 농업혁명과 과학혁명이라는 두 단계의 레벨업을 살펴보고, 발전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깊이 있게 고찰해 보겠습니다.

농업혁명: 문명의 시작과 예상치 못한 대가

농업혁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인간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남는 식량이 생겼고, 이는 문명 발전의 핵심 요인이 되었습니다. 수개월에서 년 단위로 식량을 저장할 수 있게 되면서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고, 늘어난 인구는 기술 발전을 가속화했습니다. 더 많은 식량이 생산되면서 모든 사람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탄생했습니다. 광부, 군인, 공무원, 왕과 같은 전문직이 등장했고, 이들을 통합하는 국가라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습니다.
국가는 남는 식량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문자를 개발했고, 문자는 인류 지식의 세이브 로드 장치가 되어주었습니다. 선대의 지혜가 문자를 통해 후대로 이어지면서 지식의 축적이 가능해졌고, 이는 다시 기술 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언어와 문자의 발명은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를 넘어 문명 발전의 근본적 토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표현합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식품을 섭취하며 비교적 여유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아침에 나가 버섯을 따고 나물을 캐고 개구리를 잡은 뒤, 오후에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춤을 추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반면 농업사회의 농부들은 타는 듯한 태양 아래에서 하루 종일 잡초를 뽑고 밭을 갈며 고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극히 최근까지도 대부분의 농경사회 사람들은 쌀과 같은 단일 식량에 의존하며 영양 불균형적 식사를 했습니다. 반찬 없이 고봉밥만 먹던 조상들의 밥상은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비타민 부족으로 영양실조에 걸리고 키도 작아지며 몸도 허약해졌습니다. 가뭄이나 화재,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단일 작물에 의존하던 사회는 기근에 휩싸여 대량 아사 사태를 겪어야 했습니다.

과학혁명: 무지의 발견과 끝없는 탐험

인류의 두 번째 각성은 과학혁명이었습니다. 과학혁명 이전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예수나 부처, 공자에게 물어보면 되었고, 그들도 모르는 것은 알 필요가 없는 쓸모없는 지식이거나 오히려 알아서는 안 되는 금기였습니다. 이카루스나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의 지나친 호기심을 경계하는 교훈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과학혁명은 이러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물리학자들은 한평생을 연구해도 빅뱅의 원인이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통합 방법을 모르겠다고 솔직히 인정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알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바로 무지의 혁명입니다. 빈틈없이 꽉 차 있던 세계 지도는 절반 이상이 공백으로 그려졌고, 이 공백은 사람들의 모험심과 정복욕을 자극했습니다.
의학 분야의 발전은 과학혁명의 성과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사소한 부상에도 의사들은 손과 다리를 톱으로 잘랐고, 군 병원에는 의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보다 목수 집 아들이 더 많았습니다. 어린이 3명 중 1명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사망했고, 인류의 기대 수명은 40세를 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인류는 수많은 질병과 상처를 극복했고, 기대 수명은 거의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과학자들은 벌레의 수명을 6배 늘리고 학습 능력이 뛰어난 천재 생쥐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생체공학 팔, 망막 임플란트, 바이오닉 귀와 같은 신체 대체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2050년이면 일부 인류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진지하게 예측합니다. 유전자 조작, 나노로봇, 뇌의 컴퓨터 업로드 같은 판타지가 현실이 될 가능성에 인류는 엄청난 자본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행복의 역설: 발전이 곧 행복을 의미하는가

유발 하라리는 이 지점에서 냉정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게 진짜 레벨업처럼 보이세요?" 우리는 날이 갈수록 더 좋고 발전된 세상을 살고 있다고 믿지만, 역사가 펼쳐짐에 따라 인류 복지가 무조건 좋아진다는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2천 년 전 가뭄으로 굶어 죽은 아이가 "나는 영양실조로 죽지만 2천 년 뒤 사람들이 맛있는 밥을 먹고 에어컨이 딸린 큰 집에서 살 테니 난 괴롭지 않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병든 사람을 치료한 것도 과학이지만,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것도 과학입니다. 과학 특유의 호기심과 정복욕은 미지의 바다를 넘어 아메리카를 발견하게 했지만, 그 이후 벌어진 비극적 역사 역시 과학의 호기심과 정복욕이 만든 결과입니다. 수많은 현대인이 과학이라는 발판 위에서 편안한 삶을 누리지만, 그 발판 아래에는 훨씬 더 많은 수의 희생자가 괴로운 표정으로 존재합니다.
작은 변화가 쌓이고 쌓여 사회 전체가 바뀌었을 때쯤이면, 우리는 예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까먹어버립니다. 냉장고, 에어컨, 스마트폰 없는 삶을 상상조차 못 하고, 배터리 없이 버스를 타야 할 때면 지옥 같은 공포를 느낍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없을 때 우리의 일상이 정말 괴롭고 지옥 같았나요? 역사가 증명하고 과학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인간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제대로 모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행복에 관한 고민은 매우 중요합니다. 농업의 발전으로 우리는 배불러졌고, 과학의 발전으로 우리는 편리해졌습니다. 이는 증명 가능한 사실입니다. 덕분에 여유 시간이 생겼고, 이제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행복을 결정합니다. 과거에는 오늘 하루 배불리 먹은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욕구가 쉽게 충족됩니다. 그렇기에 더욱 고차원적이고 근본적인 행복에 관해 생각해야 합니다. 남는 시간이 많을수록 우리는 생각이 많아지고, 그 공허함을 채우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공허함을 이기지 못하고 술과 담배로 여가 시간을 채우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인류가 전례 없는 평화를 누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공동체가 해체되며 전례 없는 외로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인류가 진정으로 행복해지려면 발전의 속도만큼이나 내면의 성찰이 필요합니다. 삶에 감사한 것들을 인지하고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연습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더 옳은지를 판단할 객관적 척도가 없으며, 역사의 시간 단위는 최소 수천 년인 반면 과학혁명의 혜택을 누린 기간은 100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먼 훗날의 학자는 우리 시대의 모든 혁명을 두고 또 다른 비판을 할지도 모릅니다. 과학혁명이 인류 행복의 실마리를 찾아 영원한 황금기를 맞이할지, 아니면 머지않을 미래의 파국을 일으킬 재앙의 씨앗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Uxn5UIuhRvw?si=1FaS-A5DPpWeCGg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