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 역사에서 왜 어떤 문명은 번영했고 어떤 문명은 뒤처졌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를 집필했습니다. 1972년 뉴기니 섬에서 한 정치가가 던진 질문, "왜 백인들은 그토록 많은 화물과 기술을 가졌는가?"는 단순히 인종 우열의 문제가 아닌 환경과 역사적 조건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는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문명 발전의 불평등이 유전자나 지능의 차이가 아닌 지리적·환경적 요인에서 시작되었음을 밝힙니다.
환경결정론: 문명 발전의 진짜 출발점
1532년 스페인의 피사로가 이끄는 168명의 군대가 8만 명의 잉카제국 군대를 제압한 사건은 단순한 군사적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스페인군은 총과 말, 철제 무기라는 압도적 기술력을 보유했지만, 더 결정적이었던 것은 정보의 차이였습니다. 피사로는 13년 전 코르테스가 아스텍 제국을 정복한 경험이 문자로 기록되어 있었기에 전략을 미리 세울 수 있었습니다. 반면 잉카제국은 문자가 없어 유럽인에 대한 정보를 전혀 갖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무기는 따로 있었습니다. 유럽인들이 가진 천연두, 홍역, 장티푸스 같은 질병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95%를 사망시켰습니다. 이는 총이나 칼보다 훨씬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럽인들만 이런 병균에 대한 면역력을 가졌을까요? 답은 가축화에 있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에는 소, 말, 돼지, 양 등 13종 이상의 가축화 가능한 동물이 있었고, 오랜 세월 동안 이들로부터 전염된 질병과 싸우며 항체를 만들어냈습니다.
환경결정론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백인이 우월해서가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좋은 땅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는 남북으로 긴 대륙이어서 위도가 달라 농업 기술이 확산되기 어려웠습니다. 반면 유라시아는 동서로 길어 같은 위도에서 농업 기술과 작물이 쉽게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주변 강대국인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에 둘러싸여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 오늘날의 발전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발전은 사람이 아닌 환경이 출발점이라는 교훈을 우리는 여기서 배울 수 있습니다.
농업혁명: 문명의 씨앗이 된 정착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농업혁명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농업혁명을 "인류 최대의 사기극"이라 부른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농업은 사람들을 한 곳에 정착시키고,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통해 인구 증가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부족이 도시가 되고, 도시가 제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이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인구가 늘어나자 분업과 협업이 이루어졌고, 전문가가 생겨나며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농업은 또 하나의 혁명적 발명을 낳았습니다. 바로 문자입니다. 현존하는 최초의 문자인 수메르 문자에는 "곡식 몇 짝"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곡식을 저장하고 계산하고 배분하는 과정에서 기록의 필요성이 생겨났고, 이것이 문자 발명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문자는 단순한 기록 도구를 넘어 시행착오를 축적하고 지식을 전승하는 데이터베이스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쌓인 정보가 기술 발전의 토대가 되어 결국 총과 칼, 철제 무기를 만들 수 있게 했습니다.
농업이 가져온 또 다른 선물은 가축화였습니다. 남아메리카에는 라마와 알파카 정도만 가축으로 쓸 수 있었지만, 유라시아 대륙에는 다양한 대형 포유류가 있었습니다. 가축이 되기 위한 조건은 까다롭습니다. 식성이 좋아야 하고(초식), 성장 속도가 빨라야 하며, 성격이 온순해야 하고, 집단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사자는 육식동물이라 가축화하기에 가성비가 떨어집니다. 소 한 마리를 키우는 데 옥수수 4,500kg이 필요하지만, 같은 무게의 사자를 키우려면 소 10마리, 즉 옥수수 45,000kg이 필요합니다. 코끼리나 고릴라는 성장 속도가 너무 느려 15년을 기다려야 하고, 얼룩말은 성격이 너무 사나워 가축화가 불가능합니다.
농업의 중요성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당시 발전의 바탕이 안정된 식량이었다면, 지금은 기초 과학과 지식입니다. AI 시대를 선도하는 국가들은 모두 기초 학문에 막대한 투자를 합니다. 한국은 지금까지 선진국을 따라잡느라 산업에만 집중했지만, 이제는 기초 과학에 투자하여 미래 발전의 초석을 다져야 할 시점입니다.
기술확산: 분열이 만든 유럽의 역설
흥미롭게도 인류의 기원은 아프리카입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처음 등장한 곳이 아프리카이고, 여기서 전 세계로 인류가 퍼져나갔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출발한 아프리카가 왜 가장 낙후되었을까요? 답은 기술 확산의 차이에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는 남북으로 긴 대륙이어서 위도가 달라지면 기후, 토양, 식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제주도에서 키운 귤이 서울이나 평양에서는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종으로 긴 대륙에서는 농업 기술이 확산되기 어렵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중국의 사례입니다. 세계 4대 성인 중 소크라테스를 제외한 예수, 석가모니, 공자가 모두 아시아 출신입니다. 역사의 중심은 오랫동안 아시아였습니다. 명나라의 정화는 수백 척의 대함대를 이끌고 아프리카까지 항해했습니다. 기술과 자원 면에서 유럽보다 앞섰던 중국이 왜 미국 대륙을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답은 명쾌합니다. 중국은 통일국가였기 때문에 황제 한 명의 결정으로 쇄국정책이 시행되었고, 이는 장기적으로 발전을 막았습니다.
반면 유럽은 달랐습니다. 수많은 국가로 분열되어 있었기에 한 나라가 쇄국을 해도 다른 나라가 기술 개발을 계속했습니다. 경쟁 구조가 오히려 혁신을 촉진한 것입니다. 김상욱 교수의 말처럼 과학의 시작은 무지의 인정이었고, 유럽인들은 자존심보다 호기심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땅을 탐험했습니다.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자원을 가져오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며, 산업혁명과 기술혁명이 만나 폭발적 성장을 이뤘습니다. 전기를 발명한 사람은 에디슨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많은 발명가가 있었지만, 에디슨은 이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사람입니다.
한국도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이라는 우수한 문자 덕분에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 큰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문자와 정보의 확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결국 기술 확산의 핵심은 개방성과 경쟁 구조에 있습니다.
『총, 균, 쇠』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문명의 불평등은 유전자나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결정론으로 설명됩니다. 농업혁명이 인구 증가와 기술 발전의 토대를 만들었고, 기술확산의 구조가 장기적 성장을 좌우했습니다. 한국이 오늘날의 위치에 오른 것도 주변 강대국이라는 환경적 압박과 한글이라는 우수한 문자, 그리고 개방적 학습 태도 덕분입니다. 이제는 기초 과학에 투자하여 미래 발전의 씨앗을 뿌려야 할 때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ZuZMdGOw-Q0?si=Rj2O2wzg1AGggmC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