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은 1950년대 미국의 여성 대학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여성에게 기대되던 삶은 결혼과 가정을 우선시하는 것이었고, 교육은 오히려 그 역할을 더 충실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당당히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는 '여성은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이고, 둘째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가?'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시대극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의미 있는 질문과 메시지를 품고 있습니다. 특히 ‘자기 결정’, ‘사회구조’, ‘도전’이라는 키워드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감동을 줍니다.
자기 결정: 여성도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가
주인공 캐서린 왓슨은 웰슬리 여자대학교의 미술사 강사로 부임합니다. 그녀는 예일대 출신의 지성과 열정을 지닌 인물이지만, 당시 사회의 눈으로 보면 결혼도 하지 않은 불완전한 여성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녀가 강단에서 마주한 학생들은 지적 수준이 높고 똑똑하지만, 대부분의 목표가 좋은 결혼이었습니다. 결혼이 곧 성공이자 사회적 인정을 의미했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캐서린은 학생들에게 다른 시각을 제시합니다. 여성도 스스로의 삶을 계획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정해진 길을 벗어나 ‘무엇이 진짜 나다운 길인가'를 질문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학생들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향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많은 선택지 앞에서 사회적 기준을 의식합니다. '이 나이에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나도 그래야겠지'라는 생각은 자칫 나 자신의 의지를 지워버립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멈춰 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삶은 정말 당신이 결정한 것인지 진지하게 물어봅니다. 자기 결정은 단순히 '내가 고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외부의 기준과 압박 속에서도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방향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주체성의 획득입니다. 캐서린은 이상적 롤모델이기보단, 그 선언의 첫 신호탄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녀는 학생들의 삶을 대신 결정해주려 하지 않고, 그들이 ‘질문’하게 만듭니다. 진짜 교육자란 결국 그 질문을 끌어내는 사람일 것입니다.
사회구조: 개인의 선택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
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요소 중 하나는 사회 구조입니다. 영화는 여성들이 단순히 결혼을 꿈꿨기 때문에 진로를 포기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조차 스스로 인식할 수 없게 만든 구조를 보여줍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베티'입니다. 그녀는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라나 학교 신문을 통해 결혼과 가정 중심의 삶을 적극 지지합니다. 하지만 결혼 이후, 남편의 외도와 외면 속에서도 집안일과 외모 관리에만 매달리는 자신의 삶이 공허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그때서야 그녀는 캐서린이 말한 삶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 장면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개인이 삶의 방향을 선택하려면, 먼저 '다른 길도 있다'는 인식이 가능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는 그 선택지를 구조적으로 차단하고 있었습니다. 여성의 진로, 교육, 경제적 독립은 사치로 여겨졌고, 스스로의 잠재력을 실현하려는 시도는 종종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현대 사회는 과거보다 많은 선택지를 제공합니다. 또한 모두들에게 그 길은 열려 있고, 열심히 도전한다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적 압박 속에 놓여 있습니다. 경제적 여건, 성별, 가정환경, 문화적 기대 등은 오늘날에도 개인의 선택을 제약하는 배경으로 작용합니다. 이 영화가 현재까지도 유효한 이유는, 그런 구조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조명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단지 ‘용기를 내서 선택하라’는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라, 선택이 가능한 조건을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함께 강조합니다. 사회가 얼마나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허용하느냐가 진짜 자유의 척도라는 점을 이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도전: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는 데 필요한 용기
영화 속에서 캐서린은 학생들을 도전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 자신도 도전 중입니다. 그녀는 보장된 커리어와 존경받는 자리를 얻기보다,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교육적 실험을 시도합니다. 학생들과 갈등하고, 동료 교사들과 충돌하며, 때로는 무시당하기도 합니다. 그녀가 경험한 모든 순간은 안정된 세계에서 벗어나는 대가였습니다. 도전은 늘 고립을 동반합니다. 특히 모두가 ‘정답’이라 믿는 길에서 벗어날 때, 사람은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낍니다. 영화는 그런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두려움 속에서 질문하고, 고민하고, 돌아서더라도 다시 나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성장’을 보여줍니다. 주인공 캐서린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방식이 모두에게 통하지도 않고, 누군가는 그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녀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에게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누군가에게는 도전으로, 누군가에게는 해방으로 작용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수히 많은 선택 앞에서 머뭇거리게 됩니다. 도전의 실패가 너무 크게 느껴지고, 주변과의 비교는 나를 더욱 위축시킵니다. <모나리자 스마일>은 그런 상황 속에서 ‘완벽한 도전’이 아니라 ‘불완전해도 시도하는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도전이란 거창한 목표를 향한 직선이 아닙니다. 그것은 때로 멈췄다가, 돌아섰다가, 다시 한 발 내딛는 느린 과정일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 과정 속에 존재하는 진짜 가치와 의미를 포착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당신의 시도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조언합니다.
<모나리자 스마일>은 과거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메시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 결정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정말 자유로운지, 사회 구조는 얼마나 개인의 삶에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등과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저 그 질문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나리자 스마일>은 단순한 ‘여성 영화’가 아닙니다. 모든 세대, 모든 성별이 함께 고민해야 할 주제를 다룬 작품입니다. 우리도 오늘 하루,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없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그 질문을 하는 용기 그 자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