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제가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실험을 시작할 때마다 설레었고, 목표를 세우며 의욕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막상 실패가 반복되거나 결과가 더디게 나올 때는 '이건 내 적성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앤젤라 더크워스의 『그릿』을 읽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제가 가진 건 열정이 아니라 단순한 설렘이었다는 것을요. 진짜 열정은 강도가 아니라 지속성이었습니다.
그릿의 정의와 재능 신화
그릿(GRIT)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성공 예측 지표 중 하나로, 장기 목표를 향한 열정과 끈기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끈기란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실패 후에도 계속 도전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포함합니다. 쉽게 말해 한 번 넘어졌다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힘입니다. 앤젤라 더크워스는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의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7주간의 지옥 훈련인 '비스트'를 통과하는 학생들의 특징을 분석했습니다(출처: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연구). 수능 점수나 체력 점수가 아니라 그릿 점수가 가장 높은 학생들이 끝까지 남았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제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세포 배양 실험을 3개월간 반복하면서 오염이 계속 발생했을 때, 주변에서는 기준을 낮추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이 먹는 것에 타협은 없다"는 원칙을 고수했고, 결국 오염 원인을 핸들링 과정에서 찾아냈습니다. 그 과정이 지루했고 좌절스러웠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제가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목표가 제게 의미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타고났어'라고 말합니다. 니체는 "모든 완전한 것에 대해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묻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결과만 보이기 때문에 과정은 보이지 않습니다. 재능 신화는 우리에게 위로를 주지만, 동시에 발전의 기회를 빼앗습니다. "나는 재능이 없어"라고 말하는 순간,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가 생기니까요.
열정의 지속성과 번아웃의 경계
일반적으로 열정은 한순간 미친 듯이 좋아하는 감정으로 오해받습니다. 하지만 그릿에서 말하는 열정은 장기 목표에 대한 지속적 관심(sustained interest)입니다. 여기서 지속적 관심이란 몇 년간 같은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단기간의 흥분이 아니라 멀리 보는 힘이죠. 앤젤라 더크워스의 연구에 따르면, 영업직 종사자들 중 그릿 점수가 높은 사람들이 실제로 더 오래 직장에 남았고 성과도 높았습니다(출처: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제 경험상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오염 제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3주간 반복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매일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면서 사람들의 핸들링 습관을 바꾸는 일은 정말 지루했습니다. 그런데 그 지루함을 견디는 힘이 바로 그릿이었습니다. 설렘은 3일이면 사라지지만, 의미 있는 목표를 향한 책임감은 몇 달을 갑니다.
다만 저는 그릿을 무조건적인 버티기로 해석하는 것은 경계합니다. 번아웃(burnout)과 그릿의 차이는 명확합니다. 번아웃은 의미를 잃은 채 관성으로 버티는 것이고, 그릿은 의미를 유지하면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몰입하는 것입니다. 제가 실험 결과를 백지화했을 때도, 그건 고집이 아니라 원칙에 대한 책임이었습니다. 만약 그 과정에서 제 건강이 무너지거나 팀원들이 지쳐 나갔다면, 그건 그릿이 아니라 강박이었을 겁니다.
그릿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실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목표를 기록하고 매일 확인하기
- 작은 성공 경험을 쌓아 자신감 유지하기
- 실패를 학습의 기회로 재해석하기
- 휴식과 회복을 루틴에 포함하기
천직 찾기와 재현 가능한 끈기
저는 그릿이 감정이 아니라 구조라는 것을 실험 과정에서 배웠습니다. 매일 세포를 관찰하고, 3개월 동안 조건을 바꿔가며 반복 실험을 하는 과정은 영감이 아니라 시스템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기록과 기준, 재현 가능한 루틴이 있었기에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앤젤라 더크워스도 그릿이 높은 사람들은 의지력(willpower)에 의존하기보다 습관과 환경을 설계한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20대에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나는 끈기가 없어"라고 자책합니다. 하지만 그릿이 높은 사람들도 처음부터 한 가지에만 몰입한 건 아닙니다. 여러 일을 경험하면서 천직(calling)을 찾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천직이란 자신의 강점과 가치관이 일치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이건 발견하는 것이지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 여러 가지를 시도하는 과정 자체가 그릿을 키우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무작정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기록과 기준, 재현 가능한 루틴으로 오래 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릿을 제 식으로 적용한다면, 끝까지 버티되 번아웃을 미덕으로 착각하지 않고, 의미 있는 목표에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몰입하는 쪽을 택할 것입니다. 재능이 아니라 노력입니다. 설렘이 아니라 끈기 있는 지독한 열정입니다.
결국 그릿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목표의 정당성, 회복할 수 있는 시스템, 의미를 유지하는 구조가 함께 가야 합니다. 저는 이 책의 메시지를 "끝까지 버텨라"보다 "의미 있는 것을 끝까지 책임져라"로 읽습니다. 그래야 성취만 남고 사람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열정은 몇 점인가요? 설렘인가요, 아니면 지속 가능한 책임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