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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심리의 양면성 (사이비 종교, 익명성과 전염성, 주체적 판단력)

by gogoday 2026. 2. 9.

책 <군중심리> 표지 사진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집단의 일원으로 살아갑니다. SNS를 통해 순식간에 확산되는 정보, 거리를 가득 메운 응원 인파, 때로는 충격적인 사이비 종교 사건까지, 군중심리는 우리 삶 곳곳에 존재합니다. 19세기 프랑스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이 제시한 군중심리 이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사이비 종교와 맹목적 추종의 메커니즘

최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는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이비 종교 단체 내에서 발생한 갈취, 폭행, 강간, 살인 등의 중대한 범죄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습니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왜 그 많은 구성원들이 교주를 따라 비상식적인 범행에 동참했느냐는 점입니다.
귀스타브 르 봉은 그의 저서 『군중심리』에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핵심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그가 정의한 '군중'은 단순히 한 곳에 모인 수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공통적인 감정이나 신념에 따라 결합된 '심리적 군중'을 의미합니다. 사이비 종교 단체의 신도들은 바로 이러한 심리적 군중에 해당합니다. 나이, 직업, 학력, 성격이 모두 다른 개인들이 교주의 교리라는 단 한 가지 신념으로 결합되면서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르 봉은 군중이 단지 개개인의 총합이 아니고 개인들의 특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새로운 존재라고 말합니다. 천재적인 사람이라도 군중 속에서는 모두가 지닌 평범성을 공유하게 됩니다.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은 이러한 군중의 특성을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그들은 단언, 반복, 전염을 사용하여 신도들에게 사상이나 신념을 주입합니다. 논리적 증명보다는 단호한 말, 반복적인 언급, 강렬한 이미지가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죠. 지도자가 강한 의지를 갖고 확신에 찬 모습을 보이면 신도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를 따르게 됩니다. 한번 주입된 신념은 매우 오래 지속되며, 군중은 이를 지키고자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합니다. 개인이 아무리 똑똑해도, 교주의 말이 비논리적이라도, 한번 주입된 신념은 쉽게 버리기 어렵기 때문에 부도덕한 교주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범죄까지 용인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익명성과 전염성이 만드는 군중의 특성

군중이 개인과 다른 행동 양상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르 봉은 군중의 특성을 충동적, 변덕스러움, 맹신, 보수적, 단순하고 과장된 감정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합니다. 그는 군중이 무의식의 지배를 받아 항상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단독으로 생활하는 합리적인 개인과는 반대로 군중의 행동은 맹목적인 감정에 떠밀려 지적·도덕적으로 낮은 경우가 많다고 언급했죠.
이러한 특성은 세 가지 요인에서 비롯됩니다. 첫째, 익명성입니다. 군중은 수많은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각 개인은 스스로 익명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평소라면 드러내지 않았을 감정도 군중 상태에서는 과장되게 나타납니다.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듯이, 집단 내에서 개인의 행위는 묻혀버립니다. 사이비 종교 신도들이 평소 온화했던 사람이 "저 이단을 죽여라" 소리 지르거나 책임 소재 없이 교주를 위한 범법 행위를 거리낌 없이 행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둘째, 전염성입니다. 감정과 행동이 군중 사이에 전파되면서 군중만의 고유한 특성이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구성원들은 점점 전파된 내용을 절대적 진리로 믿고 비판적 사고 능력을 상실하게 이릅니다. "교주님을 거역하면 지옥에서 큰 처벌을 받았대"라는 소문이 퍼지면 어느새 교주에 대한 복종이 군중의 진리로 자리 잡게 됩니다. 2002 한국 월드컵의 거리 응원에서도 같은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응원하자는 감정이 전염되면서 수십만 명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심리적 군중이 탄생했던 것입니다.
셋째, 피암시성입니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영향, 즉 암시를 받아 특정한 행동을 하는 것이 피암시성입니다. 최면술사가 "당신은 잠에 듭니다"라고 말하며 손가락을 튕기면 그 앞에 있던 사람이 잠이 드는 경우와 비슷합니다. 사이비 교리를 암시받은 신도는 그 교리에 따라야 한다는 암시로 인해 그에 맞는 행위를 하게 됩니다. 암시된 것을 현실이라고 여기게 되기 때문에 어떤 암시를 받느냐에 따라 군중의 특성에도 큰 차이가 나게 됩니다.

주체적 판단력으로 군중심리 경계하기

군중심리 자체를 긍정적이다 또는 부정적이다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르 봉이 책을 저술할 당시 프랑스는 보불 전쟁, 파리 코뮌 등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분열과 참상을 보았던 르 봉이 군중심리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기 쉽지 않았겠죠. 그렇지만 사회 변화를 이끈 수많은 혁명에서 군중의 영향력을 배제하지는 않았습니다. 르 봉도 "군중이 가끔이라도 이성적으로 사고해 눈앞의 이익을 따졌다면 이 땅에서 어떤 문명도 꽃피우지 못했을 것이며 인류도 역사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과거의 마녀 사냥과 같은 나쁜 행동부터, 한국 2002 월드컵의 응원 열풍, 아이스버킷 챌린지 등과 같이 유쾌하고 긍정적인 부분까지 군중심리는 우리 삶 이곳저곳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도시가 확대되고 SNS가 등장하면서 정보의 전달과 확산의 속도가 매우 빨라졌습니다. 이에 과거와는 달리 훨씬 다양한 공간에서 크고 작은 군중심리 현상이 발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자유롭게 행동할 권리가 있기에 군중심리에 참여하여 행동하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자유를 보장받기에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 행동하기 전에 내가 군중심리에 의해서 행동하는 건 아닌지 경계해야 합니다. 어떤 군중심리가 발생했을 때 그 사건의 핵심 근거와 논리를 스스로 이해해 보고 납득이 가는지 생각하는 힘을 기르면 이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익명성, 전염성, 피암시성이라는 군중심리의 세 가지 요인을 인식하고, 집단 속에서도 개인의 판단력을 유지하려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19세기에 쓰인 르 봉의 『군중심리』는 21세기 현재까지도 다양한 사회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군중심리는 자연스러운 사회적 현상이지만, 부정적인 측면으로 휩쓸리지 않도록 주체적인 고민과 반성이 필요합니다. 집단의 목소리에 휩쓸리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논리와 근거를 확인하는 습관이야말로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갖춰야 할 자세입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며,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와 주체적 판단력이 필수적입니다.

 

[출처]
나쁜 교주가 끌리는 이유 -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 https://youtu.be/06_Zkx2Qh8E?si=n6QaUK8WOQZVRXY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