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를 대표하는 문학가이자 정치가, 과학자였던 괴테는 단순히 '파우스트'의 저자로만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는 마지막 르네상스형 천재로서 문학, 행정, 과학을 넘나들며 방대한 지식을 축적했지만, 동시에 그 지식의 한계를 누구보다 냉철하게 직시했던 인물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SNS에서 쉽게 접하는 명언들처럼, 괴테의 말들도 진위보다는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떻게 스며드는가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괴테, 마지막 르네상스형 천재의 다면성
괴테의 본명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입니다. 여기서 '폰'은 독일에서 귀족 칭호를 뜻하는데, 원래 상인 및 법률가 가문 출신이었던 그는 1782년 33세의 나이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요제프 2세로부터 귀족 칭호를 받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문학적 업적만이 아닌,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으로서 보여준 실무적 능력 덕분이었습니다.
1775년부터 괴테는 바이마르 공국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 밑에서 추밀 고문관으로 일하며 재정, 광산, 도로 건설, 군사 등 국가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헌신했습니다. 동시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럽 전역에 문학적 명성을 떨쳤죠. 그러나 괴테의 천재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해부학과 식물학에 해박했으며, 식물의 모든 기관은 잎의 변형이라는 변형설을 제기했습니다. 이 이론은 훗날 현대 유전학을 통해 생물학적으로 타당함이 입증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광학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입니다. 1810년대에 '색채론'을 저술하며 색상이 인간에게 인식되는 방식을 연구했던 괴테는 물리학자로서의 면모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부터 학문들이 전문화되면서 각 분야의 지식이 폭발적으로 팽창했고, 유한한 한 인간이 이 모든 것을 섭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괴테는 이러한 변화의 경계에 서 있었던, 말 그대로 마지막 르네상스형 천재였습니다. 오늘날 독문학 전공자 중에 리만 가설을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듯이, 학문의 세분화는 괴테 같은 통합적 지성의 시대를 종결시켰습니다.
사용자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종종 과거 철학자나 성인들의 명언을 접하면서 그 말의 진위보다는 그 글에서 받는 깨달음에 더 집중하곤 합니다. 괴테 역시 그런 방식으로 소비되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괴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다면적 천재성과 동시에, 그가 직면했던 시대적 한계를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개몽주의의 한계와 괴테의 냉철한 시선
괴테의 박학다식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식은 당대 사회의 근본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괴테 본인이 가장 사무치게 잘 알고 있던 사실이었습니다. '학자 비극'이라는 부제가 붙은 '파우스트' 1부에서 파우스트 박사는 과거 마을에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자신과 아버지가 치료약을 지어준 의사로 칭송받지만, 그 약이 돌팔이 약이었다는 사실에 절망합니다.
"그렇게 지옥의 탄약을 가지고 우리는 이 골짜기에서 이 산간에서 흑사병보다 훨씬 더 고약하게 설쳐댔어. 나 자신이 수천 명에게 그 독을 주어 사람들이 시름시름 죽어갔는데 나는 살아서 이제 뻔뻔한 살인자들을 찬양하는 소리까지 듣네."
괴테에게 동시대 학자라는 존재는 계몽주의의 사도가 아니라 이른바 '어두운 명의'에 불과했습니다. 지식은 있지만 그 지식은 실체적인 문제에 대해서 기껏해야 대증요법이거나 혹은 독약이었습니다. 실제로 괴테가 다녔던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은 유럽에서 의학으로 유명한 곳이었고, 1805년에는 근대적 종합병원이 바이마르에 설립됐지만, 천연두, 발진티푸스, 콜레라 등 주기적인 유행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괴테의 이력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1792년 발미 전투에서 바이마르 군대는 프랑스 혁명군에게 패배했습니다. 조국 수호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프랑스 지원병들과 달리, 강제 징병 및 용병 중심의 전통적인 바이마르 군은 사기 면에서 밀렸고, 탄도 및 포병 시스템도 뒤떨어졌습니다. 1806년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는 나폴레옹에게 완전히 박살 났습니다. 이때 괴테는 나폴레옹의 전리품 중 하나나 다름없었습니다.
사용자의 비평처럼, 우리는 명언의 진위를 따지기보다 그것이 주는 깨달음에 집중하곤 합니다. 그러나 괴테는 바로 그 지식과 효능의 괴리를 직시했던 인물입니다. 괴테적 박학은 국민 징병제, 탄도학, 공중 보건학 등 사회를 뿌리째 흔드는 문제 앞에서 무능했고, 이는 괴테 본인이 가장 뼈아프게 인식하고 있던 한계였습니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에서 등장하는 탑의 결사는 계몽주의적 치료 행위를 하는 일종의 시대정신에 고용된 의사들이지만, 모든 인물이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우렐리에나 하프너처럼 결국 자살하거나 미치는 새드 엔딩도 존재하죠.
명언과 삶의 융합: 고전주의를 넘어서
괴테가 질풍노도에서 독일적 고전주의로 회귀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소빙하기 때문에 농업 기반 국가였던 바이마르 공국은 본래부터 가난했고, 공작이 일찍 요절하면서 정치적 공백기의 혼란이 길었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가 외교적 계산을 잘못하는 바람에 7년 전쟁 때문에 독일 전역이 황폐화됐고, 전쟁 비용으로 인한 부채가 심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프랑스에서는 계몽주의와 대혁명이 솟아났죠.
괴테는 유럽의 격변이 시작되는 근대의 혼돈 초입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따라서 이 혼돈을 정리해 줄 어떤 모범이나 질서를 바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습니다.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괴테는 단적으로 규정합니다. "고전적인 것은 건강한 것, 낭만적인 것은 병적인 것이라고 부르겠네. 예컨대 니벨룽겐의 노래와 호메로스의 작품은 고전적인 것이네. 왜냐하면 이 둘은 건강하고 힘차기 때문이지."
이런 맥락에서 고전주의는 얼마든지 방어기제일 수도 있습니다. 시대를 초월해서 이어지는 어떤 형식이나 규범은 현기증 날 만큼 복잡한 현실에 대한 정답을 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인용할 때 실제로 횡단하는 것은 2,500년이라는 시간대입니다. 이러한 인용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허튼 소리가 아니라 2,500년을 건너올 만큼의 정수가 담긴 말이 존재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괴테는 고전주의의 한계도 명확히 인식했습니다. '파우스트'나 '시와 진실'을 아무리 읽어도 머신러닝에 대한 설계도를 발견할 수 없고, '순수이성비판'을 아무리 읽어도 치올코프스키 로켓 방정식을 도출할 수 없습니다. 고전은 분명 교훈적인 방향성이나 이념을 주지만, 이것 자체는 추상적입니다. "따뜻한 남쪽으로 가자"라는 방향성은 분명하지만, 어떻게 대륙을 횡단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책을 알려주지는 못합니다.
스치키 유이의 책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바로 이 지점을 다룹니다. 소설은 괴테의 경구라고 믿어지는 말의 출처를 찾을 수 없어 번민하는 괴테 연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은유 작가의 추천사처럼, 이 소설은 "명언으로 지은 집"이며, 세계 문학에서 채집한 문장들이 잘 박힌 못처럼 이야기를 지탱합니다. 포스트모던 기법으로 쓰인 이 책은 단순히 고전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에 담긴 지식으로 좀처럼 정돈되지 않는 실질적인 세계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습니다.
사용자의 비평은 핵심을 찌릅니다. 어떤 말이나 글의 진위보다는 내 삶에 그 말과 글을 섞어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 의심 많은 성격으로 출처를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배울 점이 있고 내 삶에 도움이 된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괴테가 '파우스트' 결론에서 말했듯이, "인간 지혜의 마지막 결론은 이러한 것이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이다." 고전의 권위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자유와 생명의 의미를 쟁취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괴테는 르네상스형 천재였지만, 동시에 자신의 박학이 가진 한계를 냉철히 직시했던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개몽주의와 고전주의 모두 그에게는 세계를 이해하려는 도구였지, 절대적 진리는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일본 사회가 '잃어버린 30년'의 연장, 물가 문제, 지정학적 갈등 속에서 '가라사대' 의존 현상을 보이는 것처럼, 우리도 혼란한 시대에 명언이나 고전에 기대고 싶은 유혹을 느낍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명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내 삶에 어떻게 융합하느냐입니다. 괴테는 그리스 비극의 숙명론을 거부하고 인간의 능동적 의지를 강조했듯이, 우리도 고전의 권위에 안주하지 않고 매일 새롭게 의미를 창조해야 합니다.
[출처]
(148) 19세기적 천재 괴테 설명회 (feat.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홍익학당: https://youtu.be/m2yuTVAdKO0?si=pg1TrM4Vp67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