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는 단순한 악당의 탄생기를 넘어섭니다. 이 영화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개인을 어떻게 소외시키고 방치하며, 결국 하나의 파괴적인 존재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주인공 아서 플렉의 일상은 처절할 정도로 고립돼 있습니다. 그는 광대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정신 질환으로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하지만, 아무도 그를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습니다. 영화는 아서를 둘러싼 환경이 어떻게 그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결국 ‘조커’라는 상징적 존재로 몰아가는지를 심도 있게 추적합니다. 이 글에서는 <조커>가 보여주는 세 가지 핵심 문제인 사회적 고립, 정신 건강에 대한 무관심, 붕괴된 사회 시스템을 중심으로, 우리가 외면해 온 사회 구조의 이면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1. 고립: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
아서 플렉은 사회 속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대중교통에서도, 일터에서도, 심지어 집에서도 타인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살지만 진실된 교류는 거의 없으며, 동료들조차 그를 진심으로 이해하거나 도우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영화는 이와 같은 사회적 고립이 단순한 외로움을 넘어서, 한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어떻게 파괴해 가는지를 보여줍니다. 고립된 사람은 결국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하게 됩니다. 영화 속 아서는 우연히 얻은 권총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을 쏘아버리고, 이후에야 처음으로 세상으로부터 주목받습니다. 그의 존재가 사람들의 시선에 등장하는 순간은 바로 폭력을 통해서입니다. 이는 매우 충격적이지만, 그만큼 상징적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때로는 파괴를 통해서만 들리게 되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고립은 더욱 만연해지고 있습니다. 빠른 디지털화, 공동체 해체, 경쟁 중심의 사회 구조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누군가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보다, 화면을 보는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조커〉는 이 단절의 시대에 ‘고립’이 사람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지를 통렬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2. 정신 건강: 치료받지 못한 감정은 언젠가 터집니다
아서 플렉은 명확한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웃음을 통제할 수 없는 신경 질환을 앓고 있고, 지속적인 상담과 약물 치료가 필요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영화 속 복지 시스템은 예산 삭감으로 인해 상담 서비스를 중단합니다. 담당 상담사는 “이제 우릴 더는 지원하지 않아요”라며 무력한 통보만 남긴 채 사라집니다. 아서는 치료를 중단당하고, 약도 끊기게 됩니다. 사회가 제공하던 최소한의 안전망마저 끊어진 것입니다. 이 장면은 단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정신 건강은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특히 저소득층이나 사회적 약자는 정신과 치료를 받기 위한 비용, 시간, 정보 모두가 부족합니다. 치료를 받지 못한 감정과 고통은 내면에 축적되고, 결국 언젠가는 외부로 터져 나오게 됩니다. 조커가 된 아서는 바로 그 위험성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영화는 정신 질환을 단지 무서운 것이나 괴팍한 성격의 결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해받지 못하고 방치된 고통이 결국 극단을 향해 갈 수 있음을 정제된 언어로 보여줍니다. 우리는 흔히 조용한 사람일수록 더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조커는 “당신은 그 조용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던 적이 있었는가?”라고 경고합니다.
3. 사회 시스템: 책임을 회피하는 공동체
<조커>의 배경인 고담시에는 공공 시스템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도시의 빈부 격차는 극심하고, 부자들은 고급 파티와 미디어를 통해 여론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거리에는 쓰레기가 넘치고, 복지 예산은 삭감되며,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않습니다. 이 도시는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닙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한 전쟁터일 뿐입니다.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아서가 범죄자가 된 것이 오롯이 그의 잘못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영화는 이 사실을 조심스럽게 관객에게 던집니다. 아서가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은 단순한 악행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처럼 묘사됩니다. 총을 쏘고, 자신을 괴롭힌 사회에 분노를 폭발시키는 그의 모습은, 단지 개인의 악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가 만든 산물입니다. 특히, 조커가 TV 쇼에 나가 사회를 비난하고, 결국 진행자를 총으로 쏘는 장면은 대단히 상징적입니다. 그는 “당신들은 약자를 조롱했고, 나 같은 사람을 외면했다.”라고 주장합니다. 이 장면은 단지 충격적인 반전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쉽게 타인을 조롱하고, 책임을 떠넘기며, 자기 삶만 중요하다고 여기는지를 드러내는 고백입니다.
<조커>는 우리에게 거울을 들이밉니다. 그 거울 속에는 단지 한 명의 범죄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외면해 온 구조와 무관심, 냉담함이 담겨 있습니다. 아서는 괴물이 아닙니다. 그는 치료받지 못한 환자이며, 듣지 못한 목소리이며, 우리가 방치한 고통입니다. 우리는 과연 이 시대의 또 다른 조커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당신은 고립된 이웃에게 말을 걸어본 적 있거나, 정신 건강 문제를 편견 없이 바라본 적 있습니까? 그리고, 무너지는 사회적 연대 속에서 여러분은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십니까? <조커>는 그 어느 액션 영화보다 진심으로 관객인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이자 경고장을 전합니다. 이러한 경고들은 오늘도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조용히 울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